비벌리 힐스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
🔖 세번, 깊은 관 같은 섹스 후 우린
삶과 충동은 강처럼 순환한다는 언약서를 어색하게 읽는다
때로 명과 암에 대응하다 청각마저 잃게 될 때
천장에 나비 모빌 대신 사라진 꿈들이 돌아간다
언 입김들이 벽에 부딪힌다, 네가 내 안을 떠나는 날
난 어두운 골목에서 자위 중인 남자와 마주쳐도
너의 피에 흘려 멀어버린 눈동자들을 내다 버릴 수 있을 것 같아
골방에서 알몸으로 흘러나오던 모든 라이브
거칠었지만 붉은 목덜미를 하나씩 가지고 있어
만지려 할 때마다 고독인 듯 사랑인 듯 아름다워져갔다
— 레오까디아*와의 동거
(*고야가 만년에 같이 산 여자)
🔖 기대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살아가자고 다짐했었지 해변에서 영원히 아픔 같은 건 모르고 바위틈을 기어다닐 갯강구를 보며 징그럽게 다리가 많아 나는 그렇게 속닥였다 사진도 찍고 인 자오양 그림에 파묻히기도 했지만 하지만 네 품이라면 어떨까 난 남을까 내 모습은 그 안에서 남겨질 수 있을까 아라타…… 난 여기 있어
아라타는 물어 내가 바람둥이라도 좋아? 성 밖의 거지나 인간쓰레기라도 인 자오양 그림만 편식하고 야채는 골라내고 널 안으려고 숨을 헐떡이는, 그럴 때 나는 습기와 독버섯으로 가득한 숲 속을 생각하지 어둠에 모인 울프들이 이를 번뜩이면서 살점을 뜯어내는 소리 너도 그렇게 나를 먹고 싶지 먹고 싶어 했잖아 울프들의 피 묻은 입가를 떠올리면 금방이라도 울프들의 새끼를 내가 낳을 것만 같아 독버섯 수프를 떠먹여줘도 무럭무럭 자라겠지 허송세월을 보낸 여자처럼 눈 밑이 검어지겠지 난, 어리고 상처받는 게 지났어 아라타 너와 바닥에 눕고 싶어 딱딱해진 너와, 니가 밤바람이 되어 흩어진다고 해도 좋아, 좋아 좋아해 아라타 (니가 보고 싶은데 이제 다 틀렸어)
— 아비뇽 시내에 있는 기차역(Gare d'Avignon Centre)에서 기차를 타고 어제는 비 오는 아를(Arles) 그리고 아라타에게
🔖 혐오라는 말을 붙여줄까
늘 죽을 궁리만 하던 여름날
머리를 감겨주고 등 때도 밀어주며
장화를 신고 함께 걷던 애인조차 떠났을 때
나는 사라지기 위해 살았다
발 아픈 나의 애견이 피 묻은 붕대를 물어뜯으며 운다
그리고 몸의 상처를 확인하고 있는 내게 저벅저벅 다가와 간신히 쓰러지고는,
그런 이야기를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할 것만 같다
‘세상의 어떤 발소리도 너는 닮지 못할 것이다’
네가 너는 아직도 어렵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우리가 한번이라도 어렵지 않은 적이 있었냐고 되물었다
사랑이 힘이 되지 않던 시절
길고 어두운 복도
우리를 찢고 나온 슬픈 광대들이
난간에서 떨어지고, 떨어져 살점으로 흩어지는 동안
그러나 너는 이상하게
내가 손을 넣고 살며시 기댄 사람이었다 ****
— 작별
나는 그것들과 작별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나는 그것을 향해 가요(배수아 <북쪽 거실>)
🔖 삶이 진정 혐오스러운 여행이라는 사실만이 불변하지*
(루이지 피까치 <프란시스 베이컨>)
🔖 그곳에서 뭐가 보이지? 너는 항상 몸집이 크고 털이 많은 남자와 붙어다니지 오월의 까페 테라스에서 너를 처음 봤을 때 좋은 옷 좋은 구두 그런 것들이 너의 나쁜 태생 배경을 한 겹 빛으로 감싸주고 있구나 생각했어 네 커다란 눈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어떤 일이든 한번은 꼭 일어날 것 같은
— 미찌꼬의 호사가들
🔖 시인의 말
플로베르 문장을 빌리자면 예술가는 ‘다람쥐처럼 아찔하게 높은 나무 꼭대기에 기어올라서 호두를 터는 녀석’이다. 쓰기의 운명은 어떤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것에만 있으며 비극을 써내려가는 동안 아름다운 입맞춤들을 기억해내고 다시 원하게 될 것이다. 그에 관한 사랑도.
죽음보다 더 끔찍한 것을 안고 사라진 노동자들을 위해. 모든 것이 녹고 다시 태어나는 계절에도 당신들의 살고자 함을 잊지 않고 기록할 것이다.